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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역사]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상, 세종대왕

세종대왕,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

세종대왕은 대한민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에 동상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는 꼭 들러서 사진을 찍고 가는 필수코스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실정으로 매주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요즘 참가가족들도 세종대왕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죠

[광화문 세종대왕상]

요즘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자괴감으로 새로운 리더를 강렬히 희망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따르고, 존경하는 리더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전 그 모습을 세종대왕에게서 찾았습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로 평가받는 세종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세종의 발자취

세종은 1397년(태조 6년)∼1450년(세종32년) 동안 재위한 조선의 제4대 왕입니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이도(), 자는 원정(). 태종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입니다. 비는 심온()의 딸 소헌왕후()입니다.

1408년(태종 8)에 충녕군()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되었으며,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습니다.

원래 태종의 뒤를 이을 왕세자는 양녕대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양녕대군이 개와 매[]에 관계된 사건을 비롯해, 세자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련의 행동과 사건들로 인해 태종의 선위에 대한 마음이 동요되었습니다.  그래서 태종은 자신이 애써 이룩한 정치적 안정과 왕권을 이어받아 훌륭한 정치를 펴기에 양녕대군이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태종의 마음이 이미 세자 양녕대군에게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신료()들은 그를 폐위할 것을 청하는 소()를 올려 양녕대군을 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기에 이르렀죠.  이 때 태종에게는 왕후 민씨 소생으로 양녕·효령()·충녕 등 세 대군이 있었고, 양녕대군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를 폐하고 새로이 세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세자 폐립에 관해 의론이 분분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종의 마음은 이미 셋째아들인 충녕대군에게 쏠려 있었었죠. 1418년 6월에 태종은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민하고, 또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라고 해 택현(: 어진 사람을 고르는 것)의 명분을 주어 그를 세자로 책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처럼 충녕대군에 대한 세자책봉은 태종의 뜻에 따라 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하들도 이를 환영하였습니다. 두 달 뒤인 1418년 8월 10일 태종의 선위를 이어받아 세자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바로 이 분이 세종입니다.


세종의 업적

1.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다

세종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습니다.

2. 수많은 편찬을 통해 백성을 이끌다

집현전 학자들의 학문이 향상되고 일할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진 세종 1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행해져 수많은 편찬물을 통해 백성을 교화하고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편찬물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역사서, 유교경서, 유교윤리와 의례, 중국의 법률 및 문학서, 정치귀감서, 훈민정음·음운·언역() 관계서, 지리서, 천문·역수서, 농서 등으로 다양하고 방대하였습니다. 정치·법률·역사·유교·문학·어학·천문·지리·의약·농업기술 등 각 분야에 걸쳐 종합 정리하는 사업으로, 이 작업을 통해 이 시대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또한, 특기할 일은 이러한 많은 편찬사업이 왕의 의도에 따른 것이었고, 왕 자신도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3. 훈민정음을 창제하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길러 낸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이선로()·이개() 등 소장 학자들의 협력을 받아 우리 민족의 고유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제작자가 명확한 문자로 전 세계에서 유일합니다.  

명실공히 세종이 남긴 최고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

4.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다

세종은 또 기술이 부국강병의 기본이라고 보고 장영실 등 기술자를 육성해 물시계, 해시계, 측우기 등 과학기술과 갑인자, 병진자, 등 금속활자의 주조를 통해 인쇄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으며, 화포개량으로 나라도 튼튼히 하는 데에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 발명품]

결국,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나라가 융성한다. 

세종대가 우리 민족의 역사상 빛나는 시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안정 기반 위에 그를 보필한 훌륭한 신하와 학자가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보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의 사람됨이 그 바탕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교와 유교정치에 대한 소양, 넓고 깊은 학문적 성취,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판단력, 중국문화에 경도()되지 않은 주체성과 독창성, 의지를 관철하는 신념·고집, 노비에게까지 미칠 수 있었던 인정 등 세종 개인의 사람됨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인적 모든 여건과 조화됨으로써 빛나는 민족문화를 건설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종이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주는 리더의 모습

1. 리더는 덕으로 이끌어야 한다.

2. 리더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써야 한다.

3. 불의나 의견에 굽히지 않는 결단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4. 국민을 존중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어떠세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분이 계신가요?

문재인, 반기문, 이재명, 박원순, 안철수, 안희정...

현재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들의 친구는 어떤 모습인가 등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겠습니다.

왜냐구요?

우리 자신과 가족, 나라의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